국민학교 시절 몇 번, 이름 외에도 감투라는 미명하에 또 다른 수식어를 하나씩 더 가져 보았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반에서 서열 4번째인 부분단장을 기억하는가? 한 개의 책상에 2개의 걸상 앞, 뒤 7줄의 총 14명의 분단에서 분단장 다음의 넘버2, 난 부분단장이다. 비록 역할은 책상 줄 똑바로 맞추는 일 정도지만, 감투를 쓴 그 기분은 감히 똥꿀래들은 상상도 못 해 봤을 것이다. 폼나는 선도의 완장과 보이스카웃 빼지목걸이 같은 것도 없이, 비교할 바도 안되지만, 나름 부분단장의 자부심으로 3분단을 통솔했다. 때론, 당번을 자청하여 석탄 타러가기, 주전자 물 떠오기, 우유 받아오기, 칠판 지우기, 왁스로 교실 바닥 닦기 등 분단을 위해 열심히 솔선수범했든 기억이 난다. 40대를 살아가는 필자가 가끔 동창들을 만날 때면, 뼈까지 시린 겨울날 석탄 타러 갔든 기억이나 창문에 걸터앉아 입김으로 창문 닦든 기억 등으로 더 많이 기억될 뿐, 부분단장으로 기억해 주는 동창은 아무도 없다.

 

2013년 12월, 크리스마스 캐롤이 심심찮게 들려오는 요즈음, 각종 모임이나 단체의 회장과 임원이 새롭게 교체 된다. 조직의 특성상 또는 내규에 따라 연임하는 곳도 있겠지만, 많은 조직은 리드와 그 하부조직원들이 바뀌는 시기이다. 생활체육 동호회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생활체육 관련 단체들도 사적관계와 사적가치를 앞세우고 찬양, 선동질로 편가르고, 나눠먹기식 회장, 임원 선출이 만연하고 있음을 부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수의 희생을 강요하기보다 소수의 임원들의 봉사가 먼저 선행 되어져야 할 부분이다.

배드민턴 수성구 연합회 김철한 회장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기억이 난다. “쓴 소리도 할 줄 아는 회원이 있어야하며, 어떤 경우도 경청은 리드의 자질에 우선시 되어야 조직이 건강해진다”라고 했다. 하지만, 현실에 임원들은 책임부재는 당연지사고 권리나 특권의식은 하늘을 찌르고 있지 않은가! 귀 닫고 지껄이는 상대의 주둥이에 풍선을 대고 딴청 피우기 일쑤며, 환호하듯 손뼉치면서 하품하는 것은 옵션이다.

'그 나물에 그밥'이라는 회원들의 의식과 참여부재도 문제겠지만, 분명 조직을 이끄는 수장과 임원들은 모두를 위한 조직부흥에 먼저 응답해야 할 것이다.

 

나는 부분단장이었다. 하찮게 여길만도 하지만, ‘각자가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 할 때 누구나가 주인공이다.’하고 선생님이 말씀 하셨다. “모두”라는 이름 앞에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으며, 최선을 다 했다. 지금까지 아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